경주 금척고분군에서 만난 천년 봉분의 고요한 숨결

늦여름의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오후, 경주 건천읍의 금척고분군을 찾았습니다. 초입에 들어서자 완만한 구릉 위로 크고 작은 봉분들이 고르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봉분 사이를 스쳐 지나가고,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소리가 들판의 정적을 깨우는 듯했습니다. 처음엔 단순한 언덕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봉분의 형태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돌과 흙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고분들은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온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 아래 줄지어 선 봉분들이 한 시대의 권위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었고, 그 앞에 서자 묘한 경건함이 느껴졌습니다.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스며든 자리였습니다.

 

 

 

 

1. 찾아가는 길과 접근 동선

 

금척고분군은 경주시 건천읍 신평리 일대의 낮은 구릉 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경주 시내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이며, 내비게이션에 ‘금척고분군’을 입력하면 주차장까지 안내됩니다. 입구에는 ‘사적 제175호 금척고분군’이라 새겨진 표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고분의 분포도와 발굴 내용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고분군 중심부까지는 약 200m 정도 평탄한 길을 따라 걸으면 됩니다. 길은 잔디가 깔려 있어 걷기 편했고, 주변은 낮은 언덕과 논이 어우러져 평화로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초입에는 전망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전체 고분군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바람이 언덕을 타고 부드럽게 불어와, 걷는 내내 고요한 기운이 이어졌습니다.

 

 

2. 고분군의 구성과 공간 인상

 

금척고분군은 크고 작은 봉분 20여 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봉분의 직경은 15~25미터, 높이는 약 5미터 정도로, 대부분 원형 봉토분입니다. 일부 봉분은 도굴로 인해 윗부분이 훼손되었지만, 여전히 본래의 형태를 뚜렷하게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봉분 표면은 잔디로 덮여 있고, 그 사이사이에 야생화와 억새가 자연스럽게 자라 있었습니다.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에는 각 고분의 구조와 매장 방식, 출토 유물의 종류가 사진과 함께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발굴 당시 금동장신구, 토기, 말갖춤 장식 등이 발견되어 신라 중기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탁 트여 있었고, 봉분들이 마치 물결처럼 이어져 고요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3.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의미

 

금척고분군은 통일신라 이전, 6세기 전후의 경주 지역 유력 귀족들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지역은 신라의 지방세력이 성장하던 시기의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금척고분군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사회적 위상과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금척(金尺)’이라는 이름은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 유물의 형태가 자(尺)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전해집니다. 봉분 내부는 석실분 또는 석곽분 구조로 되어 있으며, 일부 무덤에서는 신라인 특유의 마구류와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안내문에는 “땅 속의 시간이 여전히 숨 쉬는 곳”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단순한 흙무더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신라인의 삶과 믿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관람 환경

 

금척고분군은 전체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문화재청과 경주시에서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봉분 주변의 잔디는 고르게 정비되어 있고, 잡초나 쓰레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내로를 따라 이동하면 각 고분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한 표지판이 나와 관람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부 구간에는 목재 데크와 관찰용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전체 지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실과 음수대, 그늘 벤치가 입구 쪽에 마련되어 있었으며, 접근로가 평탄해 노약자나 어린이도 쉽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위적인 조형물 없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정돈된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요한 들판 위에 남겨진 봉분들이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5. 주변 명소와 연계 코스

 

금척고분군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불국사’를 방문했습니다. 고분군의 고요한 분위기에서 이어지는 불국사의 웅장함은 또 다른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어 ‘석굴암’으로 이동해 신라인의 정교한 불교 조각미를 감상했습니다. 점심은 건천읍의 ‘토함산한정식집’에서 들렀습니다. 된장찌개와 나물 반찬이 담백했고, 지역의 산나물 향이 진했습니다. 오후에는 가까운 ‘옥산서원’으로 향해 조선 유학의 흔적을 살펴보았습니다. 금척고분군–불국사–석굴암–옥산서원 코스로 하루를 구성하면 신라의 역사와 조선의 정신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모든 이동이 20분 이내 거리라 시간의 여유도 충분했습니다. 천년의 시간을 잇는 여정으로 손색이 없었습니다.

 

 

6. 방문 팁과 추천 시간대

 

금척고분군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시간은 오후 4시 무렵으로, 석양빛이 봉분의 곡선을 따라 부드럽게 드리워질 때입니다. 오전에는 안개가 살짝 깔리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여름에는 푸른 잔디와 대비되어 생동감이 넘칩니다. 가을에는 억새가 피어나 은빛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눈 덮인 봉분이 수묵화처럼 고요합니다. 신발은 평지용 운동화를 추천하며, 날씨가 더운 날에는 모자와 물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고분군 내부 출입은 금지되어 있으므로, 지정된 관람로를 따라 이동해야 합니다. 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봉분 사이의 공기와 바람의 흐름을 느껴보면, 신라인들의 시간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됩니다.

 

 

마무리

 

경주 건천읍의 금척고분군은 화려한 장식은 없지만, 세월의 무게와 고요한 품격이 살아 있는 국가유산이었습니다. 봉분 하나하나가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신념을 조용히 전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들려오는 풀잎의 소리와 함께, 천년 전의 숨결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찾는다면 가을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봉분이 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에 오고 싶습니다. 금척고분군은 신라의 역사를 품은 들판이자,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사색의 공간이었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세월의 깊이를 조용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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