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불회사 석장승 비 갠 들판에서 만난 고요한 수호의 기운
비가 갠 오후, 나주 다도면의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불회사 석장승을 찾아갔습니다. 논 사이로 난 도로 끝에, 커다란 돌기둥 두 개가 서로 마주 보듯 서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면 평범한 돌기둥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눈, 코, 입이 거칠게 새겨져 있고 묘하게 생동감이 느껴졌습니다. 얼굴의 윤곽은 세월에 닳아 부드러워졌지만 표정은 여전히 단호했습니다. 이곳은 조선 후기부터 마을의 수호신으로 세워진 장승이자, 불회사로 향하는 옛길 입구를 지키던 돌수호신이라 합니다. 주변은 적막했고, 돌 표면을 타고 흐른 빗물이 마치 눈물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래된 돌이 전하는 침묵이 묘하게 따뜻했습니다.
1. 다도면 불회사로 향하는 길목
나주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25분, 다도면 천주리 방향으로 이동하면 ‘불회사 석장승’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좁은 시골길을 따라가면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도로가 있고, 그 끝에 두 개의 장승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다도면 정류장에서 하차 후 마을길을 따라 약 1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합니다. 주차는 인근 공터를 이용하면 되며, 비포장 구간이 약간 있어 천천히 이동해야 합니다. 입구에는 ‘좌대장군’과 ‘우대장군’이라 새겨진 비석이 각 장승의 아래에 세워져 있어 방향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도착 순간, 마치 옛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며 절을 했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2. 석장승의 모습과 주변 풍경
불회사 석장승은 높이 약 2미터, 화강암을 거칠게 다듬어 만든 입상 형태입니다. 얼굴의 이목구비는 단순하지만 기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눈썹은 두껍고 코가 뚜렷하게 돌출되어 있으며, 입가에는 살짝 미소가 비칩니다. 장승 아래쪽에는 이름과 조성 연대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데, 일부 글자는 세월의 흔적으로 닳아 있었습니다. 장승 둘 사이로 난 길이 불회사로 이어지며, 그 뒤편에는 낮은 산등성이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돌의 색은 햇빛에 따라 회색에서 청회색으로 변했고, 표면의 이끼가 푸른 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마을과 산을 동시에 바라보는 위치라 풍경이 탁 트여 있었습니다.
3. 장승이 가진 역사적·신앙적 의미
불회사 석장승은 조선 후기 나주 지역의 민간신앙과 불교적 상징이 공존한 흔적입니다. 원래는 절을 향하는 길목에서 잡귀를 막고, 마을의 평안을 지키기 위한 수호물로 세워졌습니다. 불회사 사찰이 위치한 다도면 일대는 예로부터 풍수적으로 ‘기운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장승이 보호의 의미를 지녔다고 전해집니다. 흥미롭게도 두 장승의 표정이 다릅니다. 왼쪽 장승은 미소를 띠며 온화한 인상을 주고, 오른쪽은 살짝 눈썹을 찌푸려 강직한 분위기를 냅니다. 이러한 대비는 음양의 균형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종교적 경계보다는 사람과 자연, 마을의 조화라는 공동체적 신앙이 느껴졌습니다.
4. 방문객을 위한 배려와 주변 정비
장승이 서 있는 주변은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잔디가 깔린 작은 공터와 안내 표석, 그늘막 벤치가 마련되어 있으며, 문화재 안내문에는 조성 시기와 특징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장승 앞에는 향로대가 놓여 있는데, 제향일에는 주민들이 모여 향을 피우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한다고 합니다. 비가 온 직후라 주변 흙길이 촉촉했고, 공기 중에 돌냄새와 풀향이 섞여 있었습니다. 관리가 세심하게 이루어져 있어 이끼가 과도하게 덮이지 않았고, 장승의 표면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현대의 구조물 속에서도 전통이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5. 불회사와 연계한 나주의 탐방 코스
석장승을 보고 나면 바로 이어진 길을 따라 불회사 사찰로 이동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도보로 약 10분 거리이며, 산길이 완만해 산책하듯 걷기 좋습니다. 불회사는 백제 때 창건된 고찰로, 조선 후기 재건되어 현재의 대웅전과 범종각이 남아 있습니다. 경내에는 천년 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장승의 상징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후에는 다도면의 ‘운흥리 고분군’이나 ‘나주호 전망대’를 함께 둘러보면 하루 일정이 알차게 이어집니다. 점심 무렵에는 다도면 시장 근처에서 산채비빔밥이나 된장국을 즐기면 좋습니다. 역사와 풍경, 사람의 삶이 함께 엮인 여정이 되었습니다.
6. 탐방 시 유의점과 팁
불회사 석장승은 야외 문화재이므로 날씨에 따라 환경이 크게 달라집니다. 비 오는 날에는 돌이 미끄러우므로 가까이 접근할 때 주의해야 합니다. 봄과 가을에는 햇살이 부드럽고 사진 촬영에 좋은 시기입니다. 장승 주변은 신앙의 공간이므로 손을 대거나 기념품처럼 다루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해 질 무렵에는 주변 조명이 부족하므로 오전 방문이 좋습니다. 여름철에는 풀숲에 벌레가 많아 긴 옷을 권장합니다. 또한 장승 뒤편 산길을 통해 불회사로 이동할 때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조용히 머물며 바라보기만 해도 돌이 가진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마무리
나주 불회사 석장승은 단순한 돌기둥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과 마을의 역사가 새겨진 존재였습니다. 눈, 코, 입이 거칠게 새겨졌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상징은 세월을 넘어 전해집니다. 고요한 들판 한가운데서 두 장승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은 묘한 위엄과 따뜻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습니다. 도시의 문화재와는 달리,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는 이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돌아서는 길, 바람이 장승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낮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가 오랜 세월의 인사처럼 들렸습니다. 다시 이곳을 찾을 땐, 맑은 하늘 아래에서 장승의 표정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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